[김옥조 칼럼]지도자의 덕목

등록일자 2023-05-29 12:00:01
▲김옥조 KBC 선임기자

◇ 다시 하고 싶은 일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꽤 오래전 어느 강연에서 “당신이 꿈을 키우는 시기로 다시 돌아가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한다면 무슨 직업을 선택하겠는가?”란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스포츠 감독, 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길을 선택 하겠다”는 대답에 꽂혔다. 사실 이건 내가 생각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열 번 백 번을 생각해도 다시 사는 인생에 반드시 선택해 볼 만한 꿈이자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30여 년 전, 기자 초년시절 회사가 창사기념 문화행사로 개최한 유명 팝스오케스트라공연을 취재하게 되었다. 특히 지휘자와의 인터뷰는 지금도 기억 속에 살아있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던 지휘자는 “지휘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손동작과 속도, 표정, 눈짓에 따라 수 십 명의 단원과 다양한 악기가 따라오는 것에 참기 힘든 희열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아름다운 화음과 선율을 창조해 내는 순간이야말로 최고조의 교감과 감동을 체감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지휘를 하는 것은 지휘자의 생각과 의도를 제스처로 표현하면 그것이 연주자와 교감을 통해 ‘하나의 위대한 음악’으로 펼쳐져서 공연장이 ‘또 다른 하나 예술’로 엮어진다는 점이 항상 좋다고 했었다.

최근 개그맨이자 방송인 김현철씨가 전문 지휘자로 변신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지휘자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 지휘 퍼포머’라고 겸손하게 자세를 낮추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붙인 ‘김현철의 유쾌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임에 분명하다. 그가 방송 등에서 밝힌 지휘자로서의 감회 또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보람과 성취감이 이야기하고 있어 관심이 간다.

지휘가 개그맨 할 때보다 수입은 적다고 한다. 하지만 개그나 연기를 할 때보다 그 “행복지수가 훨씬 높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이 일은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며 하고 싶어 하는 일이기에 더 행복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독학으로 배운 지휘이고 악보를 읽지 못하지만 악보를 달달 외워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휘를 한다. 그렇게 해서 뿜어 낸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행복한 음악으로 감동을 선사하고 박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김현철씨 처럼 ‘지휘자’는 누구나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휘봉을 한번쯤 잡아보고 싶지 않을까 싶다.

◇ 연예인 선수와 국대 출신 축구 감독

나는 TV 리모컨을 잡고 화면을 돌리다가 우연히 걸려든 스포츠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 가장 애시청하는 것이 SBS 예능프로그램 ‘골때녀(골 때리는 그녀들)’다.

요즘 스포츠 예능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세 프로그램이다. 각 방송사마다, 채널마다 축구, 야구, 골프 등 대중적 종목을 다룬 프로그램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전혀 이질적이고 다른 분야로만 여겼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방송이라는 영역에서 하나로 묶여진 것이 특징이다.

스포츠와 예능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이자 재미를 들여다보게 하는 점에서 그 의도가 신선해 보인다.

‘골때녀’가 나의 시선을 붙잡는 이유는 이렇다. 첫재 유명 스타들이 총출동하여 자신의 본업이 아닌 ‘축구’라는 스포츠 종목 속에서 자신의 장기와 기량, 역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수들은 모두 여성 연예인, 방송인들로 짜여져 있다. 평소 연기와 공연, 방송에서 자기 전문 분야에서 끼와 재능을 선보여온 유명인이 그것도 격한 축구를 한다는 것이 여간 재밌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곱고 여리 여리하고 예쁘기만 한 여성 연예인이 오기와 투지를 드러내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면 박수로 응원하게 된다.

두 번째는 예능에서의 역할 교체이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방송인이거나 스포츠 스타로 유명인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은 벤치에 있고 관람객으로 응원자였던 여성 연예인이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가 된 것이다. 사실상 역할을 맞바꿔 놓은 ‘역할 교체 설정’ 의도가 흥미로운 것이다.

배우, 가수, 개그우먼,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모델, 리포터 등 방송을 통해 자주 눈에 들어왔던 스타급 젊은 여성 엔터테이너들이 축구선수로 변신한 것이다.

여기에 이영표, 김병지, 이을용, 오범석, 김영광, 이천수, 정대세, 조재진 등 국가대표 출신 유명축구선수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감독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들의 이 같은 변신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흥미롭다. 분명 예능 프로그램의 연기인데 실제 상황인 점도 눈길을 오래 잡아두는 요소이다.

◇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의 덕목

가장 큰 이유는 세 번째이다. 감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축구만 해온 프로팀 감독이 아니지만 유명세를 가진 일반 여성팀의 감독을 맡아 축구를 구현하는 과정과 결과를 알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팀을 조련하고 경기를 지배하는 감독의 지략이 나온다. 팀 스포츠에서 감독은 앞서 말한 지휘자와 다를 바가 없다.

개인의 기량과 포지션, 경험, 신체적 조건, 감각이 각기 다른 선수들을 톱니바퀴처럼 도는 한 팀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상대팀의 전술에 따라 대응하며 자신의 팀 선수들이 유기적 움직임으로 공을 주고받으며 골대를 향해 전진하고 진격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보면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180도 달라진다. 감독이 어떻게 훈련하고 지시하고 선수를 기용하고 게임을 이끄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골때녀’를 보는 재미이다.

단결과 협동, 책임, 환호, 자책이 엇갈리며 숨김없는 자세와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 본성의 승부욕을 가감 없이 표출해 시청자와 공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축구 감독이 선수와 팀을 성장하게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축구공을 다뤄보기는커녕 운동장에 나와 뛰어본 기억조차 아스라한 아마추어 유명 여성선수들의 야성과 승부근성을 밖으로 드러나게 한 것이다.

그라운드의 악바리로, 지략을 가진 세트 플레어로, 위기를 막는 수비수로 축구 속에서 자기역할을 키워내 자신과 팀을 지키고 ‘골인’이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의 덕목이 아닐까. 바로 ‘지도자란, 리더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겸손’과 ‘경청’은 지도자의 덕묵

우리들이 늘 보고 듣고 가까이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지도자는 어떠한가. 전 세계 패권을 쥐고 다투는 바이든과 시진핑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들이 그들에 대해 아는 정보는 외신을 통해 접하는 일반 뉴스뿐이다. 그래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정도이다.

그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국가 지도자는 어떠해야 할까. 요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으로, 일본으로 분주히 순방외교를 하며 주권국가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다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불안감을 떨쳐버리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IMF 때 보다 더 힘든 경제위기가 닥칠 수 있을 것이란 걱정도 쌓이고 있다.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도발에 한반도에 미치는 안보 불안요소를 언제까지 안고 가야 하는지 국민들의 우려도 가시질 않고 있다. 어느 때보다 국민 목소리에 귀를 열고 국론 통합에 나서야 할 때이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여론을 더 많이, 자주 경청하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많다. 모두가 공감하는 소통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도자는 판단하고 결정하고 지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항상 의회와 협력하고 시민사회단체와 교감하며 언론과 소통하여야 시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무릇 지도자는 ‘겸손’과 ‘경청’이란 덕목을 실천해야 된다고 했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스포츠 감독처럼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란다. 그래서 만인의 환호와 박수를 받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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