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심경숙 작가 "병상의 죽음 보며 '문학의 길' 다짐"

등록일자 2024-02-23 09:25:48
성경 등 수많은 작품 필사하며 한땀 한땀 소설 익혀
"쥘 베른 같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 쓰고 싶어"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내가 쓰는 소설이 독자의 삶에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심경숙 작가. 사진 : 본인 제공

"종합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게 됐어요. 그 경험을 소재로 쓴 첫 소설이 운 좋게(?)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설공부를 시작했죠.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소설을 쓰겠습니다."

전남 무안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69살 심경숙 씨.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51살에 처음 써 본 소설이 신춘문예에 뽑혀 문학의 길에 들어선 늦깎이 소설가입니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최근 4년 연속 잇달아 여러 문학상에 당선돼 지역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독서..소설가 '꿈'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심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 책을 좋아해 그때부터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고 언니, 오빠들이 공부하느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자연스레 언니 오빠들이 보는 책을 읽었죠. 특히 고등학교 다닐 때 정기 구독했던 '독서신문'이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해서 3남매를 낳아서 기르느라 어릴 때부터 가졌던 소설가의 꿈을 잊고 지냈습니다.

▲2020년 여수해양문학상 수상 후 박혜강 소설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심경숙 작가. 사진 : 본인 제공

그러다가 종합병원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목격한 죽음의 문제를 종교적 관점에서 풀어쓴 쓴 첫 소설 '단속사 가는 길'이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작가의 타이틀은 갖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제대로 소설 공부는 해보지 않았다는 심 작가.

때문에 소설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 문장은 어떻게 운용하는지 몰라 여기 저기 스승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박상우 선생의 문학교실 '소행성 b612'에 등록하고 격주로 6년간 서울로 수업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목포에 머물던 고(故) 천승세 소설가, 유금호 목포대 교수에게서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역 일간지 신춘문예에 번번이 낙방하면서 재능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2016년 창작기금을 받아 그동안 썼던 작품을 모아 소설집 '나비의 문'을 발간하고 소설을 그만 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박혜강 소설가 만나 다시 열정 되살려

그러던 중 2019년 박혜강 소설가를 만나 다시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박혜강 선생님이 나의 작품을 지역 일간지 최종심에서 보았다고 해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선생님 문하에서 포기했던 소설 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소설 쓰는 것이 조금은 성숙해졌습니다. 선생님이 강조하는 '일물일어설'이 소설 쓰는 것을 두렵게 하면서도 도전 의식을 갖게 했습니다."

▲2016년 창작기금을 받아 펴낸 소설집 '나비의 문' 표지. 사진 : 본인 제공

그 이후 2019년 현진건문학상(소금의 눈물)을 시작으로 2020년 여수해양문학상(미늘), 2021년 서귀포 문학작품상(빙떡 이야기), 2022년 무예소설문학상(본국검 황루)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상복이 터졌습니다.

이 가운데 현진건 문학상 추천작상을 받은 '소금의 눈물'은 심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삶이 주는 폭력에서 도망친 여자가 폐가마에서 죽염을 구우며 치유하는 과정을 쓴 작품으로, 다시 소설에 대한 꿈을 꾸게 했기 때문입니다.

심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광주·전남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비의 문'은 함평 나비 축제를 소재로 한 것으로 고교 시절 음악 동아리였던 세 친구가 100마리 나비를 날리기 위해 함평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습니다.

여수해양문학상 대상작인 '미늘'은 신지끼라는 인어 전설과 돗돔을 잡으려는 남자 이야기입니다.

'복어'는 복어회로 미인도를 만드는 전설적인 사부를 닮아 미인도에 도전하는 복어회를 뜨는 여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심 작가는 "대부분의 소설이 내가 사는 지역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우주로 나가는 미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소설 공부 방법의 하나로 주로 필사를 한다는 심 작가.

작품 타이핑을 하면 마음을 다스리는데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빙떡 이야기'로 서귀포문학 작품상을 수상한 후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 : 본인 제공

박상우 선생의 '내 마음의 옥탑방', 황석영의 '삼포가는길'은 손으로 썼습니다.

동아일보 중편소설 여러 편과 파울로 코엘로 작품 '알레프'도 직접 타이핑했습니다.

성경 한 권을 타이핑했고 신약은 손으로 썼습니다.

최근에는 박혜강 선생의 중편 '생두부', '조선의 선비 1권'을 타이핑했습니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가끔 작업실 근처 저수지 주변을 걸으며 오래된 팽나무를 끌어안고 600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기(氣)를 받습니다.

◇ 2019년부터 4년간 무안문학회 회장 역임

심 작가는 무안문학회에 참여하면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무안문학은 36회째 동인지를 발간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존폐기로에 놓일 만큼 어려운 시기에 회장을 맡아서 힘들게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 작가는 소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삶의 지표다. 춘향전이나 흥부놀부전을 보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한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인간의 미래를 기획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쥘 베른같은 무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을 쓰고 싶다. 내가 쓰는 소설이 독자를 감동시키고 독자의 삶에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습니다.

※ 심경숙 작가
△ 1955년 경남 진주출생.
△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단속사 가는길' 당선
△ 주요 작품 : '소금의 눈물'(2019, 현진건 문삭상 추천작), '미늘'(2020, 여수 해양문학상), '빙떡 이야기'(2021, 서귀포 문학작품상), 장편 '본국검 황루'(2022, 무예소설문학상), 단편소설집 '나비의 문'(2016)
△ 2020년 전남예술인협회 예술인공로상(전남도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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